영혼의 더 고차적 교육
많은 사람이 수년간 영혼의 특정 자질을 수련했지만, 투시력이 뒤따르지 않기에 조급해하거나 회의적으로 된다. 그들은 단지 몇 가지 자질만 개발했고 다른 것은 제멋대로 두었다. 투시력의 선물은 잠재능력의 개발을 허용하지 않는 모든 자질이 억제될 때 가장 먼저 스스로 나타난다. 확실히 영적 눈과 귀의 시작은 초기에 나타날 수 있지만, 이것은 모든 가능한 오류를 범하기 쉬운 어리고 여린 싹일 뿐이며, 주의 깊게 기르지 않으면 곧 사라질 수 있다.
분노와 짜증 외에도 대항해야 할 자질은 야망, 소심함, 호기심, 미신, 자만심, 편견의 병, 험담에 대한 게으른 사랑과 계급, 성별, 인종 등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있다. 우리 시대에는 그러한 자질에 대항하는 것이 지적 능력의 향상과 관련 있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신비주의 신봉자는 지적 능력의 확장이나 인위적인 수행의 실천보다는 그러한 문제가 중요함을 알고 있다. 특히 이 점에 관한 오해가 생기기 쉬운데, 많은 사람이 두려움을 없애야 하기에 무모함을 길러야 하고, 인종과 계급 등의 편견과 싸워야 하므로 인간의 차이점을 모두 무시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러한 차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걸 먼저 배워야만 더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어떤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방해하고, 인종에 대한 편견은 인간의 영혼을 바라보는 걸 막는다.
신비 수행자는 모든 정확성과 미묘함에 자신의 상식을 완전하게 적용해야 한다. 심지어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모든 것은 그의 신비주의 교육의 길에 장애가 될 것이다. 동시에 여기서 예를 들어 설명해야 하는 한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대답이 필요한 것을 말할 때, 대답하는 사람은 그 순간 토론 중인 주제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상대의 의도와 감정, 심지어 편견조차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수행자는 어떤 섬세한 감각을 함양하기 위해 자신을 민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로 견해가 상반될 때,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판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잠시 자기 의견을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가능한 한 질문자의 말을 신중하게 듣고, 들은 것을 토대로 답을 정해야 한다. 그럴 때 그 수행자에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떤 생각이 있으며, 만약 이 생각이 내면에서 아주 중요해져 성품의 특징으로 자란다면 그는 참된 길을 걷고 있다.
그 생각은 다음과 같다: 『내 견해가 상대와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점은 내가 그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상대가 스스로 올바른 견해를 발견할지 여부이다』 그런 생각을 통해 그 수행자의 행동 양식과 성품엔 신비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인 온화함이 스며들게 된다. 엄격함은 영혼의 눈으로 불러와야 하는 내적 이미지를 모호하게 하지만, 온화함은 그 길에서 많은 장애물을 치우고 내면의 기관을 연다. 영혼은 이 온화함과 함께 곧 다른 특성을 개발할 것이다. 그는 자기 영혼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주변 영적 삶에서 미묘함을 조용히 평가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성취하면 타인의 환경 안에서 그 영혼의 감정에 영향을 받으며, 그의 내면의 영혼이 햇빛 속에서 크게 자라는 식물처럼 성장하면서 체계화된다.
온화함과 차분한 신중함, 진정한 인내는 영혼을 영혼의 세계로, 영을 영의 영역으로 이끌어 준다. 평정과 은거 속에 인내하라.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에게 온 감각을 닫으라. 당신의 이전 습관에 따라 내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든 생각이 완전히 고요하게 하라. 완전히 고요해지며 내면은 침묵하고 끈기 있게 기다리면, 더 높은 고요한 세계가 당신 영혼의 눈과 영의 귀를 발달하게 할 것이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고차적 감각의 발달에 도움이 될지라도 영혼과 영의 세계에서 바로 보고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감각을 어느 정도 얻기 전에는 영혼으로 보고 영으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평정과 은거 속에 인내했다면 일상 활동을 하며 마음과 생각에서 먼저 명심하라. 『언젠가 내가 준비되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지의 노력으로 더 높은 힘을 자신에게 끌어오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말라』 모든 신비 수행자는 그 길의 입구에서 교사에게 이런 지시를 받는다. 그것들을 지키면 진보하지만, 지키지 못하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하지만 끈기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그것들을 성취하기 어렵다. 자신을 위해 놓인 것 외에 다른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원하면 누구나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이 점을 계속 주장할 필요가 있는데, 많은 사람이 신비주의의 길에 놓인 어려움에 관해 완전히 잘못된 개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에 정통한 사람은 이 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입문하지 않는 자에겐 그것이 이상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신비주의의 길에서 멀리 나아갔다고 하자. 자신이 가까이 있음을 전혀 모르고 영혼의 눈과 영의 귀로 가는 입구에 서 있다. 그때 그는 아주 평화롭게 그 존재로 들어갈 행운을 얻어 영혼의 눈에서 안대가 떨어지게 된다. 갑자기 볼 수 있고 영혼의 눈을 얻는다! 다른 사람은 아마도 지금까지 안대를 벗기만 하면 될 정도로 나아갔는데 어떤 운명의 일격으로 안대를 벗는다.
다른 사람에겐 바로 이 타격이 실제로 그의 힘을 마비시키고 에너지를 약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신비 수행자에겐 그것이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어쩌면 세 번째 사람은 어떤 드러난 결실도 없이 오래 인내했을 것이다. 조용한 방에 고요히 앉아 있는 동안 문득 빛이 그를 감싸고, 벽은 투명해지면서 사라지고, 그의 열린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거나 깨어난 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