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이 생각나는데 두리안 하나를 온 가족이 나눠서 먹더군요. 각자 한 조각씩요. 때론 더 적게 돌아가죠. 그런 나라들에서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비싼 과일이니까요. 사치품이죠. 허나 내 견공은 이렇게 작아요. 시추나 말티즈, 작은 말티즈만한 데도 두리안을 다 먹어요. 혼자서 쉬지도 않고요. 두리안이 있으면 친해질 수 있어요. 적어도 다 먹을 때까진요. 다 먹으면 주저 없이 거리낌 없이 작별해요. 두리안을 또 줄 때까진요.
그날 그녀는 밖으로 나와 바로 덫으로 뛰어들었어요. 배고프고 목말랐을 테죠. 열 때문에요. 그래서 그녀를 위해 쳐놓은 큰 우리 안으로 들어갔죠. 그렇게 그녀를 잡았어요. 난 운전사가 갈 때까지 그녀를 데리고 있으라 했죠. 운전사가 갔을 때, 그녀는 고열 때문에 이미 아주 약한 상태였어요. 우린 즉시 응급 의사를 불렀어요. 내 모든 견공들, 입양된 모든 내 견공들을 치료했던 그 의사가 그녀에게 임시 처방으로 약을 먹였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곳으로 데려왔을 때… 방콕에서 한 시간 걸리는데 병원에 데려가야 했어요. 거기서 2주 정도 입원했고 호전됐어요. 아주 안 좋은 증상이 나타났거든요… 매일 설사를 하고 고열에 시달려 입원해야 했어요. 다행히 살아남았죠. 세상에, 그 여자애는 살아남았죠. 그렇게 아팠고 굶주려서 밖에서 온갖 쓰레기를 먹고 지냈지만 살아남아 건강해졌죠. 무리 중 가장 크게 짖어요. 내 말을 못 믿겠다면 그녀 근처에 가봐요. 그럼 들을 수 있어요. 『이 집에서 누가 제일 힘이 셀까?』 하며 보여주겠죠.
아, 그 이유… 앞에서 『그녀는 사람을 두려워』 하느냐고 물었죠. 이제 다 두려워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을 두려워해요. 우리만 믿죠. 매일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만요. 그리고 내 손에서 받아먹죠. 나는 쓰다듬고 안아주고 태우고 다닐 수 있어요. 그래서 대개는 조수에게 태우고 다녀보라고 했더니 지금은 그녀도 익숙해졌죠. 태우고 다니는 건 괜찮아요. 기분 좋은 날에는요. 그래도 처음엔 케이지로 달아나 숨곤 하는데 그러면 나오게 구슬려야 해요. 고구마나 두리안 등 맛난 걸로요. 비건 개껌이요. 그러면 천천히 나와서 먹을 것만 낚아채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죠. 그리고 나서는 먹을 걸 밖에 놔두면 다시 나오죠. 일단 맛을 보면 두리안을 통째로 다 먹으려고 해요. 돈이 아주 많이 드는 떠돌이 견공이에요. 왜냐하면 태국이나 어울락(베트남)에서도 보통 두리안을 그렇게 통째로 먹진 못하거든요.
돈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내가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두리안 하나를 온 가족이 나눠 먹었죠. 각자 한 조각씩요. 때론 더 적게 돌아가죠. 그런 나라에서도 두리안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비싼 과일이니까요. 사치품이죠. 그런데 내 견공은 이렇게 작아요. 시추나 말티즈, 작은 말티즈만한 데도 두리안을 통째로 먹어요. 혼자서 쉬지 않고 먹죠. 두리안이 있다면 적어도 두리안을 먹는 동안엔 친구가 될 수 있죠. 다 먹으면 주저 없이 거리낌 없이 작별해요. 두리안을 또 줄 때까진요. 내가 줄 때도 다 먹으면 그냥 꼬리를 흔들면서 케이지로 들어가 버려요. 그러곤 다음번에 고구마나 좋아하는 장난감을 줄 때까지는 나오지 않죠.
오! 벌써 세 살인데도요! 다른 아이들 장난감도 다 가져와서 자기 케이지에 쌓아 놓고 하나씩 핥아서 자기 침을 다 묻혀 놔요. 표시를 하는 거죠. 그럼 나중에도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죠. 누구라도 그걸 가져가면 때가 되면 회수해요. 싸우지는 않고 몰래 다가가요. 다른 견공이 자고 있을 때 장난감을 하나씩 가져와서 케이지, 집, 자신의 작은 공간 뒤쪽에 쌓아 둬요. 내 신발도 가져갔어요. 내 슬리퍼를 참 좋아해요. 그래서 외출할 땐 뇌물로 슬리퍼 한 짝을 줘야 해요. 이러면서요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잘 지키고 있어』 그럼 아주 좋아하며 그걸 케이지에 가져다 보관해요. 어떻게 하진 않아요. 그냥 매일 쳐다보며 약간 핥아준 다음 옆에 놔두죠.
그 아이 케이지엔 물건들이 가득했어요. 지금은 주변에 슬리퍼가 별로 없어요. 전엔 그녀가 모으곤 했죠. 갖고 놀라고 한 짝을 주면 다른 한 짝도 가져갔죠. 누가 조심하지 않고 우리 집에 와서 슬리퍼를 놔두면 그녀가 그것도 『반갑게』 케이지로 가져가요. 장난감도 가져갈 수 있으면 자기만의 세상으로 가져가 소유물로 쌓아 두죠. 그녀가 아직 밖에서 지낼 땐 내가 물과 음식을 주곤 했죠. 거기선 스테인리스 제품을 사기 힘들어서 쓰지 못했죠. 그래서 밖에 플라스틱 그릇을 놔두고 음식을 줬죠. 차고 건조한 음식이나 간식을 좀 줬어요. 그녀는 그걸 통째로 물고 자기가 사는 산으로 갔죠. 하루는 별로 높지 않은 그 산의 꼭대기에 내가 가봤는데 거기에 『범죄』 증거가 다 있더군요. 마당에서 없어진 장난감, 그릇, 플라스틱 컵, 막대기 등등 전부 거기 있었어요.
한국인 여승이 하루는 울고 있었어요. 눈물은 안 보였지만 우는 것 같았어요.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걔들이 전부 가져가서 남은 게 없습니다』 했죠. 『뭘 가져갔죠?』 했더니 『견공들 그릇이요』 했죠. 『그건 별거 아니에요!』 『하지만 어제도 다른 걸…』 『그래도 별것 아니에요. 어머니라도 돌아가신 듯 울고불고 하는군요. 출가자가 그래선 안 되죠』 그제서야 그치더군요. 『출가자라면 모든 걸 무상한 것처럼 봐야 하잖아요? 표정이 왜 그래요? 정말 불행해 보이네요!』 난 말했죠. 『다들 와봐요. 출가자들은 여길 봐요!』 거주자들한테 말했어요. 『와서 봐요! 그녀를 봐요. 견공 그릇 하나 잃었다고 얼굴과 표정이 어떤지 봐요』 그녀는 무안했는지 더는 불평하지 않았죠.
하지만 어쨌든 그 견공이 물건을 자기가 사는 곳, 산꼭대기로 물고 간 건 사실이었죠. 사람이 다가오거나 잡으려고 하면 매번 그곳으로 도망갔죠. 아주 빠르게 위쪽으로 달아났어요. 그 산, 언덕은 오르기 쉽지 않아요. 허나 그 견공은 아주 쉽게 올랐죠. 자기만의 70번 고속도로가 있어요. 슉, 슉, 슉, 슉. 시속 70km로 올라가면 경찰도 아무도 못 잡죠. 운전면허증 없이 다니지만 단속을 잘 피해요. 아무도 못 잡아요. 그래서 우리도 그 방법을 써야 했죠. 태국 사람들이 그걸 생각해냈죠.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내가 약 사용을 금했거든요. 수면제, 마취제 사용을 금했어요.
약도 쓰지 말고 그녀나 다른 견공에게 포획 그물을 던져 잡지는 말라고 했어요. 어미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잡을 수 없었어요. 내가 오기 전에는 그들이 마취제를 썼죠. 그래도 못 잡았어요. 멀리 가서 쓰러지니까요. 도중에 쓰러져서 잡힐 정도로 어리석지 않죠. 중성화 수술을 해주려고 한 건데 잡히지 않았죠. 그래서 그다음엔 의사도 그러려고 했어요. 마취제를 쓰려고 했죠. 그 얘기를 듣기 전엔 나도 그러라고 했어요. 늘 잘 잡았다고 해서요. 그 의사는 그렇게 말했죠. 한 번만 마취하면 견공이 뛰어다니다가 쓰러져 잠이 들기에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죠. 그래서 허락했는데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죠. 다른 먼 데까지 가서 쓰러졌던 거예요.
다음날 다시 왔더군요. 평소처럼요. 음식이 있으면 먹고 재빨리 달아났어요. 먹고 달아나고 쳐다보면서 먹다가 달아나곤 했어요. 다음번에 내가 물었죠. 『아직 못 잡으신 건가요?』 의사가 말했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더 강하게 마취하겠습니다』 그래서 난 『그건 안 돼요! 이웃 사람에게 듣기론 전에 마취를 시켰는데 잠들지 않아서 중성화를 못 시켰다면서요. 이번에 내가 있었을 때도 마취를 시켰지만 돌아오지 않았어요. 다시 마취시켰다가 안 돌아오면 어쩌려고요? 그 애를 보세요. 뼈가 드러날 만큼 말랐어요. 먹는 것도 부족한 상태에서 아기 아홉도 보살펴야 하고요』 그녀는 이웃 사람이 음식을 충분히 안 줘서 삐쩍 말랐고 겁먹고 스트레스 받은 상태였죠. 자기 친구들은 모두 약을 먹고 죽었고 이번엔 자기를 죽이려 하니 겁을 먹고 압박감에 시달려서 아기들도 멀리 옮기려고 했어요. 2km 떨어진 곳으로 아기 둘을 옮겼죠.
다행히 하나는 찾았지만 다른 하나는 찾을 수 없었고… 내가 포상금을 걸었는데 계속 찾지 못하다가 10일인가 15일이 지나 찾았는데 너무 늦은 거였죠. 개 홍역에 걸려서 곧 죽고 말았어요. 2주 후에요. 내가 그렇게 계속 돌보고 의사들이 매일 집에 왔지만 살리지 못했어요. 난 말했죠. 『뭐라고요? 이미 압박감이 심해서 아기들을 내 집으로 안 데려왔으면 하나씩 물고 다른 데로 옮겼을 거예요. 무척 쇠약해져 있고 영양 결핍에다 압박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다시 마취제를 쓰면 아무 탈 없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그렇게 되면 양심이 편안치 않을 테죠』 그래서 난 의사에게 마취를 하지 못하게 하고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 했죠.
그런 뒤 포상금을 걸었어요. 1만, 2만 (태국 바트), 그렇게 계속 올리다가 3만 (태국 바트)까지 걸었죠. 누구든 그 어미를 잡으면 포상금을 주겠다고요. 한국인 남자가 잡았죠. 못 믿겠지만요. 그 한국인은 청년이었는데 집에 견공도 없었고 견공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죠. 그냥 나와 그 여자가 잡으려고 애쓰는 걸 보고 와서 도와줬어요. 그는 우리보다 키도 크고 더 민첩했어요. 아마 축구 선수였나 그랬어요, 빨랐죠. 어미 견공은 이미 울타리를 타고 올라갔는데 그 청년이 큰 바구니를 써서 그녀를 잡았어요. 그래서 난 정말로 그에게 돈을 줬어요. 하지만 그는 받으려 하지 않았죠. 난 말했죠. 『약속은 약속이죠. 신의 뜻이었는지 우연찮게 당신이 여기에 오게 됐죠. 포상금을 줄게요. 그 돈을 원하는 데 써요. 난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결국엔 받았죠. 그 청년과 함께 있던 한국인 남자들에게도 부탁했는데 그들은 들어오지 않았죠. 그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했어요. 『네? 왜요? 이러쿵저러쿵』 하면서요. 그 청년만 들어왔죠. 그는 영어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가 잡았고 포상금을 받았어요.
허나 이 작은 아이에게 누구도 해를… 난 이랬어요. 『누구든 그녀에게 해를 주거나 털 끗 하나라도 건드리거나 나중에 약을 쓴 게 드러나면… 의사들이 보면 알 수 있으니까요』 난 그렇게 겁을 줬어요 『그럼 고소할 거예요. 경찰에 신고해서 감옥에 보내겠어요, 알겠어요? 난 그럴 만한 힘이 있어요. 연줄이 있거든요』 실은 없었죠. 『연줄』이 있긴 있죠. 천국에요, 힘도 있고요. 스승의 힘이요. 허나 그들은 그걸 모르죠. 그러니 거짓말은 아니었죠. 그래서 그들은 그런 짓을 안 했고 나도 그걸 알았죠. 내가 견공을 사랑한다는 걸 알아도 빨리 잡으려고 견공을 학대하는 방법을 쓸 수 있으니까요. 그들은 그러지 않았고 함정 같은 큰 케이지를 썼어요, 작은 케이지라면 그녀가 눈치를 채고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요. 처음에는 지켜만 보더군요. 사흘 동안 들어가지 않았지만 아프고 추워지자 들어갔어요. 그땐 겨울철이었거든요. 열도 나고 굶주림과 갈증이 심해지자 스스로 들어갔죠. 그렇게 잡았어요.
그들은 목줄을 채웠고 내게 열쇠를 주지 않았죠. 그녀가 내게 왔을 땐 여기에 쇠 목줄을 하고 자물쇠를 채운 상태였죠. 왜 그렇게 했냐고 했더니 『일반 목줄을 했더니 여러 번 물어뜯어서 쇠 목줄을 하고 자물쇠로 잠가야 했다』고 했어요. 근데 열쇠를 안 줬어요. 믿어지나요? 내 운전사가 가니 견공을 내줬어요. 그때 견공이 아파서 병원으로 바로 보냈는데 그들이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예요. 운전사한테 열쇠를 안 줬죠. 생각해 봐요, 그 견공은 잡는 것도 어렵고 가까이 가거나 만지지도 못하는데 목에 꽉 끼는 쇠사슬을 채운 거예요. 난 정말 심히 걱정됐죠. 『어떻게 다가가서 그걸 풀어주지?』 오, 세상에. 그쪽은 사람이 많아서 그 견공에게 수건 등을 씌우고 쇠사슬을 채운 거였어요.